나도 이러는 내가 싫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 한 마디, 표정 하나에 전전긍긍하는 나와 달리 상대가 심드렁하다면 보답 받지 못할 애정을 쏟아붓는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지고 굴욕감이 들면서 화가 나기 마련이다. <출처: Gettyimages>
사랑은 사람을 외롭게 한다. 내 머릿속은 항상 그대 생각뿐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렇지 않다. 나는 상대에게 헌신적이다. 기념일에서 자잘한 일상까지 좋아하는 이를 꼼꼼히 챙긴다. 그래서 늘 사랑하는 이의 표정에 민감하다. 그이가 웃으면 세상을 다 얻은 듯싶고, 찡그리고 화를 내면 내 마음은 지옥으로 떨어진다.
상대방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그 사람은 나와 같지 않다. 그이는 좀처럼 나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는다. 무엇을 해주어도 심드렁할 뿐이다. 이럴수록 나는 비참하고 외롭다. 나에게는 저이가 모든 것인데, 상대에게 나는 대수롭지 않은 존재인 듯해서다.
하루 종일 상대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이 초라하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굴욕감마저 든다. 보답 받지 못할 애정을 쏟아붓는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내 사랑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도 이러는 내가 싫다.
존재는 응시에 의해 조각된다
이런 고민에 가슴 태우는 사람이라면 실존적 정신분석학자 이승욱의 충고를 들어볼 일이다. 그에 따르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인정에 목숨을 거는 존재”다. 갓난아이가 말을 배우는 모습을 보라. 처음부터 “내가”, “나는”하고 말하는 아이는 없다. “엄마”, “할미” 같은 말부터 먼저 한다. 왜 그럴까? 인간은 자신을 직접 바라보지 못한다. 나를 보는 다른 사람의 표정에 비추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안다.

아이들은 부모가 따뜻하고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볼 때, 자기 스스로를 사랑받는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이처럼 다른 이들의 평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은 어른이 되어도 바뀌지 않는다. <출처: Gettyimages>
예를 들어보자. 엄마가 아이를 따뜻하고 푸근한 눈으로 바라볼 때, 아이는 자신을 사랑받는 소중한 존재로 여긴다. 엄마가 화나고 차가운 눈초리로 자신을 대한다면? 아이는 금세 주눅 들고 불안해한다. 자신이 환영받지 못하는, 주변을 불편하게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듯해서다.
다른 이들의 평가에 목을 매는 모습은 어른이 되어서도 바뀌지 않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나 스스로 알 수 없다. 주변의 평가와 대접은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를 가늠케 하는 잣대다.
이승욱은 “존재는 응시에 의해 조각된다”고 말한다. 어린아이에게는 엄마가 가장 소중한 존재다. 엄마의 칭찬과 비난에 따라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는 하늘과 땅을 오간다. 물론, 아이는 자랄수록 부모에게서 멀어진다. 그렇다면 훌쩍 자란 이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알아줄 사람은 누구일까? 자기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상대방에게 목을 매게 된다. 엄마의 관심과 인정을 받기 위해 아이들이 애를 쓰듯, 나 또한 사랑하는 이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아득바득한다.
나는 그 사람에게 ‘치명적인 존재’여야 한다. 꼭 필요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나의 가치도 올라가고 내 삶에도 의미가 있을 테다. 만약 상대가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나의 가치는 바닥까지 떨어진다. 나에 대한 사랑하는 이의 표정과 말투 하나하나에 민감해지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있는 그대로 나를 보듬는 사람이 있었으면
이승욱은 우리의 사회생활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자기 팔보다 긴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다고 해보라. 이런 상황에서는 절대 혼자서 밥을 먹지 못한다. 상대방이 긴 숟가락으로 내 입속에 밥을 떠 넣어주어야 한다. 나를 헛헛하게 만드는 인정 욕구를 채우는 방법 또한 그렇다. 나 혼자만 있다면 인정받을 길이 없다. 반드시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애를 쓴다. 공부를 잘하고, 높은 지위에 오르고, 돈을 많이 벌고, 친절하고 자상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려고 노력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훌륭한 평가를 받으면 행복할까?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삶에 만족하게 될까?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보듬어줄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이 있다면 나의 가치는 언제까지나 높게 빛날 것이기 때문이다. <출처: Gettyimages>
안타깝지만 그렇지 않다. 노력함에도 인정받지 못할 때는 당연히 괴롭다. 반면, 성공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을 때도 헛헛하고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가진 돈과 명예, 아름다운 외모와 높은 지위가 사라질 때 사람들이 사랑을 거두어갈 것 같아서다.
이것들을 영원히 갖고 있다 해도 마음은 여전히 불행하다. 이 모두는 과연 내가 바랐던 것인가? 다른 이들이 부러워하고 갖고 싶어 하기에 나 또한 원하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지닌 돈, 명예, 멋진 몸과 지위 때문에 내가 사랑받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 모든 게 없을 때 나 자신은 결코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면?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나 자체로 보듬어줄 이가 있었으면”이라는 이루지 못할 꿈을 좇는다. 못생겨도, 능력이 없어도, 나락으로 추락해도, 미래가 없어도 나를 인정해줄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있다면 나의 가치는 언제까지나 높게 빛날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이런 사랑을 주는가? 그럴 리가 없다. 내 마음이 늘 섭섭하고 외롭고 답답한 이유다.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이 둘이서도 잘 산다
그러나 “나를 있는 그대로 보듬어줄 사람이 있었으면”하는 바람에는 자기 비하와 열등감이 숨어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승욱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가 타인을 인정하게 되는 메커니즘을 한번 생각해보지요. 당신은 어떤 사람을 인정하시나요? 남을 배려하고 사려 깊은 사람에게 끌리지 않나요? 지식과 교양을 쌓아 마음의 깊이가 있는 사람을 존경하지 않나요? 사회적으로 성공해 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사람을 선망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런 잣대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인정하며, 바로 그 방식과 시선으로 자기 자신도 바라봅니다. 그런데 나는 평가나 선망 또는 무시 같은 잣대로 남들을 보면서, 정작 그들에게는 나를 그런 식으로 바라보지 말아달라고 요구한다면? 이건 정당한가요? 자신은 왜 그런 시선으로 평가받으면 안 되나요? 자신이 없기 때문 아닌가요?”- 이승욱, [포기하는 용기], 쌤앤파커스, 2013, p.59.
‘나를 있는 그대로 보듬어줄 사람’을 원한다는 사실은 나 스스로에 대해 자신이 없음을 드러낼 뿐이다. 인정받는 높은 자리에 올라 부와 명예를 누리면 뭐하겠는가. 겉으로는 우러름을 받을지 몰라도, 스스로는 자신이 속 빈 강정임을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불안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집착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저이만큼은 나의 가치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보듬어 주었으면 좋겠다. 정말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도 모르는 나의 진정한 가치를 바라보고 인정해줄 것이다.
이런 바람이 과연 ‘현실적’일까? 이승욱은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이 둘이서도 잘 산다”고 말한다. 사랑이 헛헛하지 않으려면 상대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자신이 자기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무엇으로 인정받을 만한가?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인정받을 만한가? 꾸준하고 치열한 노력으로 스스로를 가꿔온 사람은 세상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다. 하루하루 쌓이는 보람, 스스로를 잘 가꾸는 데서 오는 자랑스러움은 상대방에 대한 집착을 줄인다. 상대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말고, 나 자신에게 인정받을 길을 찾으라는 소리다.
그렇다면 나에게서 자부심을 느낄 부분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사랑과 관심을 받을까?” 이 물음에 매달리는 한 내 마음은 상대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나는 내 마음에 들 만큼 훌륭한 인간인가?”에 신경 쓸 때 나의 영혼은 강하고 담대해진다. 상대의 사랑에서 의미를 찾는 삶은 불안하다. 상대에게 매달리는 정성을 스스로가 인정할 만한 자신을 만드는 노력에 쏟을 일이다.
- 글
- 안광복
- 소크라테스처럼 일상에서 철학하기를 실천하고자 하는 철학 교사.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서강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와 강연을 통해 철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저서로는 [철학, 역사를 만나다], [열일곱 살의 인생론],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교과서에서 만나는 사상] 등이 있으며 지금은 서울 중동고에서 철학 교사로 일하고 있다.
홈페이지 http://www.joongdong.h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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